셀공과
어떻게 오천명을 먹일까(요6:1-11)
예수님이 빈들에게 무리들에게 말씀을 전하시고 병든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배고픈데 집으로 가다가 허기지고 쓰려질까 염려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모인 사람은 오천명이고, 빈들입니다. 어떻게 먹을 것을 줄 수 있습니까?
빌립이 대답합니다. 각자 집으로 가서 먹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무적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기 싫습니다.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7절).” 빈들이라 음식도 없고, 음식을 사려면 200데나리온으로도 부족합니다. 빌립은 비용을 계산했습니다. 감당하지 못할 일은 그냥 못한다고 빈손으로 보내는 것이 해결책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이 하신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일이나 병든 자들은 고친 일이나 생각이 아니 않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계산도 해야 하고 계획이 서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못한다고 예수님이 못할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원인과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얼마든지 역사를 이루실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섭리만 아니라 때로는 과정 없이 결과를 내는 비상섭리로 역사하십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돈과 지식과 힘과 권력이 유일한 수단은 아닙니다. 없어도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을 통해서도 일하시고, 무지하고 나약하고 비천한 사람들을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안드레는 다른 대답을 합니다. 한 소년의 도시락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무슨 양식이 되겠습니까? “여기 안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고, 현장에서 뭔가 찾으려는 긍정적인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빌립과 다른 점입니다. 빌립이 머리로 해결하려 한다면 안드레는 현장에서 부딪쳐보는 스타일입니다. 안드레의 한계도 분명합니다. 먹을 것을 주기에는 너무 부족합니다.
이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오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잔디에 앉으라 하십니다. 안드레가 가져온 한 아이의 도시락으로 축사하십니다. 축사하시고 나눠줍니다. 축사는 식사할 때 하는 감사기도입니다. 5천명을 먹이고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기적입니다. 기적으로 양식으로 먹이셨습니다.
오천명을 먹일 수 있습니까? 있습니다. 한 아이의 도시락을 예수님께 드립니다. 예수님이 감사기도하십니다. 그리고 나눠주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내 손에 있는 아이의 도시락은 한 아이의 양식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작은 것이라도 예수님 손에 가져가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심히 창대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엘리야는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는 하늘에서 비가 내리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증거도 보이지 않다가 일곱 번 기도할 때 손만한 작은 구름이 지중해에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곧 어두워지더니 3년 6개월 동안 오지 않던 하늘에서 축복의 장마비가 내렸습니다.
엘리사는 과부된 선지 생도의 아내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생활이 어려워서 진 빚 때문에 두 아들을 종으로 팔아야 하는 딱한 처지입니다. 집에 있는 전 재산이 기름 한 병입니다. 지금 동네에 가서 빈 그릇을 빌리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름을 부었더니 빌린 그릇이 다 찰 때까지 계속 기름이 나왔습니다. 그 기름을 팔아서 빚을 갚았습니다. 기름 한 병으로 모든 그릇을 채웠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져서 잔치가 파국을 맞이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종들에게 항아리 가득 물을 부어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였더니 지금까지 보지 못한 극상품 포도주로 잔치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아침에 해가 떴을 때에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물이 찢어질만큼 고기가 잡혔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져도 헛수고 하였는데 그물 한번에 만선을 이루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한번만 던지면 됩니다.
오천명을 먹이라. 먹일 수 있습니다. 빌립처럼 돈 계산해서 안 된다고 사무적으로 처리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만 하면 됩니다. 안드레처럼 한 아이의 도시락으로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낙심하지 말고 그 도시락을 주님께 드리면 됩니다. 주님의 축사하시고 오천명을 먹이십니다. 우리는 작은 일을 하고 주님은 큰일을 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나의 가진 작은 것을 주님께 드립니다. 믿음으로 간구합니다. 주님이 축복하십니다. 내가 가진 작은 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만 하면 주님이 차고도 넘칠 만큼 역사하실 것입니다. 사마리아 성이 아람 군대에 포위당해서 큰 기근을 겪을 때 엘리사가 내일 정상으로 양식이 공급된다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늘에 창을 낸들 어찌 그런 일이 있겠느냐. 왕의 한 장관이 비웃었습니다. 다음날 아람 군대가 환청을 듣고 양식을 놓고 도망가서 말씀대로 사마리아성에 기적의 양식이 공급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빈들에 있습니다. 저녁입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가는 길이 멀어서 힘이 없습니다. 주님이 일하십니다. 주님이 일하실 기회를 드립시다. 나의 작은 것으로 주님께 내놓으면 크고 위대한 일을 이루십니다(이병각 목사).
나눔1 : 예수님이 빈들에서 집회하십니다. 말씀을 전하시고 병든 자들을 고치십니다. 저녁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집으로 가는 길에 허기지고 쓰러질 것을 염려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병들고 배고프고 길이 멀고 험해도 주님의 인도와 도움을 받읍시다.
나눔2 : 빌립은 들에는 먹을 것이 없고 많은 사람이 먹으려면 200데나리온으로도 부족하다 합니다. 그냥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안드레는 한 소년의 도시락이 있는데 이것으로는 해결이 안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오천명을 먹이고 열두 광주리가 남게 하셨습니다. 한 소년의 도시락으로 축사하시고 나눠주었습니다. 나의 작은 것을 주님께 내놓습니다. 주님의 은총과 축복을 간구합니다. 주님이 일하십니다. 오천명을 먹일 수 있습니까? 있습니다. 빈들이고, 빈손입니다. 주님께 맡기면 주님이 해결하십니다. 때로 믿은 자에게 기적을 행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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